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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 주상보시(無住相布施)
전기기술인
2009. 5. 19. 23:13
“함이 없이 행하라” 이는 행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행하라는 말이다. 즉 “내가 이일을 한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상태로 그 일을 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자의식(自意識,self consciousness)은 흔히 말하는 자아(自我,ego)를 인식함을 말한다. 이 자아라는 것은 참 나(眞我)가 아닌 가짜 나(假我)이다. 이 가짜 나를 인식하는 주체는 참나이다. 참 나는 참나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참 나(眞我)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인식하는 주체가 자신을 대상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자기라고 느껴지는 느낌을 대상화 시켜서 만들어 낸 것이 가짜나인 자아(ego)인 것이다. 그래서 자아는 실재가 아닌 하나의 가상물이다. 자기가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어디에서도 그것을 확인 할 길이 없으니 결국 다른 사람을 통해 비춰진 모습을 자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식이 가능한 육신을 포함해서 타인을 통해 주어진 직업, 이름, 성격 등등...의 정보를 자신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이 가짜 나를 자기인줄만 알고 살아간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던 이 가짜 나가 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을 하는 것은 자아(ego)가 아니고 참 나의 작용인 것이다. 그런데 참 나는 우주의식(부처님, 하나님)과 하나이기에 결국 모든 것들은 우주의식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섭리(부처님, 하느님)에 의해 나타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아(ego)를 나로 잘못 알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 가짜 나(ego)는 저절로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함이 없는 함”을 실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하는 주체는 참 나이고, 인식하는 주체도 참나이다. 그런데 참 나는 참나 자신을 인식 할 수 없으니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을 수 없고, 오직 행해지고 있음만 알뿐이다. 우리가 나라고 느끼던 자아(가짜 나)가 없어져 버렸으니, 그 동안 행하는 주체라고 여겼던 그 나가 없어진 것이다. 그 결과 행함만 있게 된다. 그래서 내가 행한다고 느꼈던 그 행함이 이제는 저절로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지게 되니 “함이 없는 행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나(가짜 나)가 없는 중(中)에 일어난 것이니 이 모든 것이 상(相)에 머물지 않는 보시 즉, 무주상보시가 된다. 그 행함은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대상에게 이익이 될 뿐이고, 그에 대한 보상은 생각되어지지 않게 된다. 오직 행함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행한 것이 아닌데 어찌 그에 대한 보답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 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자아(ego)가 없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것이 “행함이 없는 행함”이고 이것이 바로 무 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는 것이다. 물이, 공기가 우리의 생명을 살리면서도 살린다는 생각이 없다. 우주 만물은 이렇게 서로를 유지케 하면서 돌아간다. 자기가 그것을 한다는 아무런 생각 없이 자연의 섭리에 의해 변화되어 질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무 주상보시(無住相布施)다. 무 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우주의 현상, 섭리일 뿐이다. 그런데 자아(ego)를 가진 인간만이 자기가 행한다는 관념 속에 빠져있다. - 석헌 -
출처 : 선녀의 미소
글쓴이 : 석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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